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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writing)

0(제로)부터 다시 시작하다.


2008.11.18

다이어리 내용

 

 

이제 정말 다 잃은 것 같다.

 

그 어렵다는 해외취업에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가방과 지갑과 출국할 때 면세점에서 큰맘먹고 산 디카도 도둑맞아

버리고 그 지갑안에 회사 수표가 들어있었고....

 

그 밖에 가방을 잃어버림으로써 파생된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결국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지금 이 글을 쓰는 날짜는 11월 중순이지만)

 

말을 안듣는 노트북을 포맷하다가 실수로 하드에 있던 대부분의

 

데이터를 날려버렸다.

 

문서 데이터나 설치할 프로그램들은 다행히 다른 곳에 저장해 놓아

 

서 살릴 수 있었지만..... 학교 다니면서 작업했던 것들과 이곳에

 

와서 찍은 사진을 포함한 수많은 사진들은 이제 영영 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십여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주면 복원해준다는 곳도

 

있다고 들었으나, 지금 나의 형편에 그것은 지나친 사치이자 불가능

 

한 일이다.

 

이제 이곳과 한국을 통털어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가장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순으로 따지면 노트북, 내 작품집, 한국

 

이랑 연락할 수 있는 인터넷 전화기 뿐이다. 음~ 그리고 한국가면

 

커다란 내 책상도 있겠군.....

 

내가 한국을 가건 어딜 가건, 이제 나는 깔끔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요즘 들어 피부에 와닿게 느끼는 사실이 있는데

 

인간이란 비싸고 멋있는 옷을 뒤집어 쓴 존재도

 

좋은 차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존재도

 

머리를 굴리고 돈을 굴려 더 큰 돈을 만들어 내는 존재도 아닌

 

그냥 '정신'과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디카가 있어도 인간이고 없어도 인간이다.

 

다행히 열등감에 사로잡힌 나의 몸이 이렇게 자원으로 남아 있고

 

나는 여전히 좋지 만은 않은 성능의 노트북으로 디자인도 하고

 

있다.  가끔은 영어 잘한다는 소리도 들으며 이곳에 와서 수영도

 

더 잘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살면서 필요 이상의 것들을 누렸고

 

또 누리려는 헛된 욕심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사실 이곳에 머물면서 예전의 후회스러운 기억들로 괴로움을 느낄

 

때가 참 많다. 어떤 아이는 떨쳐버리기 어려웠을 10여미터 아래 딱

 

딱한 바닥의 엄마품 같은 유혹.

 

어린시절의 우월감과 자만심은 좌절감과 열등감 그리고 수치심으

 

로 완전히 대체되고 그렇게 문득문득 찾아오는 컨트롤 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앞으로 언제 또 엄습해 올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아마도 나는.....이미 하향세로 접어들기 시작한 내

 

몸뚱아리를 끌고 사는데까지는 살아볼 것이다.  

 

한국에서 나고 한국의 대중적인 교육만 받고 세계화의 경쟁속에

 

내몰린다는 것은 결국 몸부림치면 칠수록 농락 당하는 인생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몹시 슬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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