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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writing)

그들에겐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비아냥거릴 꺼리가 필요한 것뿐


 
 
 어제 돌아가신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의 소천 기사에 대한 몇몇 사람들의 광기어린 댓글들을 읽으면서 내 학창시절의 한 조각이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교 때 흔히 말하는 공부벌레였다.  중학교 때는 소설을 비롯한 글쓰기에만 거의 푹빠져 있어서 학과 공부를 별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예고로 진학할까 일반계고로 진학할까 망설이다가 결국 일반계로로 진학하게 되었고, 기초는 없지만 일반계고를 선택한 이상 오로지 내신과 수능으로만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남들보다 더 공부에 매진했었다. 중 3때 어머니가 삼풍 백화점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없다는 슬픔이나 허전함을 잊기 위해서 더 공부에 의존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쉬는 시간에도 놀지도 않고 공부만 하니까 같은 반의 어떤 아이는 나를 '이기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고, '내가 너만큼 공부하면 서울대가겠다'라고 조롱하는 아이도 있었다.(그러고 보니 그 아이가 결국 권모씨의 아들 영욱이라는 한 사람이군 ㅋ ) 그러던 중 나를 놀리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꺼리'가 하나 생겼는데, 학교에서 극기훈련을 가는 날, 당시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던 나는 학교공부만 하느라 읽고 싶던 책을 읽지 못해서 극기훈련장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심심하면 꺼내 읽으려고 얇은 소설책 한 권을 가방에 넣어 갔다.  결론적으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본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많이 읽지도 못했다.  그런데 극기훈련장에 도착 후 아이들이 혹시 술이나 담배등을 가져왔나 확인을 위해 소지품 검사가 실시 되었다.  선생님이 가방에 있는 것들을 모두 바닥에 꺼내 놓으라고 하셨고,  내 소설책도 꺼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걸 본 어떤 아이가 "여기와서까지 언어영역 공부하려고 하냐?"고 말했고 나를 놀리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때부터 합세해서 나를 '언어영역'이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건 수능공부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그냥 심심할 때 읽으려고 가져온 거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그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언어영역이라고 놀리기 시작했고 그 언어영역이라는 별명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지 일년 내내 그 별명으로 나를 불렀다.   그 당시에는 그런 아이들이 도대체 왜 저러나 싶고 짜증났었지만 어느 덧 세월이 흘러 다 지난 일들로 묻어두고 있었는데.....
하 목사님의 소천소식에 대한 댓글로 '하용조 유부녀'  '하용조 재산은닉' '하용조 목사 선거법 위반'이라고 검색해보면 다 나오는데 왜 인정 하지 않으려고 하냐는 댓글이 하도 많아 진짜 검색을 해봤더니 '하용조 유부녀' 에 대해서는 어떤 특정인이 언론사명을 사칭해서 트위터에 잔뜩 근거도 없는 글들을 도배해 놓고 있었고, '하용조 재산은닉'에 대해서는 예전에 한 기업인이 온누리 교회에 거액의 십일조를 한 것을 한 기자가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기사화 한 것으로 보였다. '하용조 목사 선거법 위반'은
하용조 목사님 뿐 아니라 많은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저지르시는 실수 아닌 실수 "예수 믿는 사람 찍읍시다."라고 설교시간에 말한 것을 가지고 선거법 위반이 아니냐는 주장을 한 것이다. 사실 세 번째 건에 대한 것은 나 개인적으로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이라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앞의 두 가지에 대한 것은 인터넷 언어 폭력의 야만성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사건' 때도 타진요의 학력위조설에 대해 확신을 하면서 타블로가 거짓말을 멈추고 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열을 냈었다. 그 때도 사람들은 어디선가 증거자료들을 구해와서 열심히 붙여넣기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의 신빙성을 증명해 보였다.   그렇지만 결국 타블로가 정말로 스탠포드대를 졸업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타진요'가 행했던 행동들은 의미도 없고 각 개인들의 열정을 낭비하고 피해 당사자인 타블로에게도 상처와 손실을 가져온 웃기지만 웃을수만은 없는 해프닝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 대중들의 '진실을 규명하라고'하면서 정작 '진짜 진실에는 관심없이 가벼운 비아냥 거림이나 때론 광끼어린 비판을 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겐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희망없고 무료한 일상에서 욕하고 비판하고 비아냥거릴 대상이 필요한 것 뿐이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열정에 넘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말 진실이 밝혀져 더 이상 공격할 대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그들은 싫은 것 아닐까? 하는 느낌마져든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때 나에게 '언어영역'이라고 놀리면서 웃었던 그 아이들이 지금은 그대로 30살짜리 한국인이 되어서 인터넷을 달구고 있겠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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