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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Review)

인간과 디자인Ⅰ (Human & Design)


 
 이런 상상을 해보자.  만약에, 만약에 내일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집안에 있던 모든 식기들이 사라졌다고 해보자. 물을 마시기 위해 물컵을 찾았지만 물컵이 없어서 물통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셔야 하고, 급한 아침시간에 계란 프라이라도 해먹으려고 했는데 담을 그릇이 없어서 프라이팬에서 바로 먹어야 한다면?

뭐 이 정도쯤이야 평소에도 그렇게 한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감수할만한 일일 것이다. ,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당신의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도구들을 삭제해 나가 보자. 

신문을 보면서 계란프라이와 우유를 먹으려고 앉을 곳을 찾았지만 의자와 테이블이 없다. 당신은 바닥에 앉아야 한다. 그런데 바닥이 점점 밑으로 꺼지더니 사라져 버리고 그냥 흙바닥이 되어버린다. 비를 막아주고 강한 햇빛을 막아주던 지붕이 날아가버리고 이내 외부와 당신을 차단해주던 벽도 사라진다. 설마하는 생각에 프라이팬을 보니 프라이팬은 온데간데 없고 계란프라이는 바닥에 떨어져서 흙속에 반쯤 묻혀있다. 컵속에 담겨 있던 우유는 진작에 땅속에 스며들어버렸는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웃에 살던 김씨도 집터만 남아있는 곳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어 서있다. 그런데 김씨가 입고 있던 옷이 포토샵에서 Opacity를 줄이듯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아예 투명해져 버린다. 김씨는 알몸이 되었다. 그걸 지켜보는 당신도 마찬가지로 알몸이 되었다. 도시를 하늘에서 보니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는 땅위에서 알몸이 되어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것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들은 아직 말도 할 수 있고 생각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랜 세월 동안 당연하게 써왔던 도구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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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용어의 간편한 사용을 위해 도구의 개념을 꽤 넓은 범위까지 확장시켰다. 밥을 먹는 숟가락에서부터 집을 비롯한 도시기반시설들까지 도구라고 생각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바란다. >




도구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그 도구를 디자인한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구상의 모든 도구는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방금 언급한 숟가락도 집도 도로도 가로등도 모두 디자인 된 것이다. 만약 위의 상상처럼 도구가 없이도 말하고 생각하는 기능만으로 인간일 수 있다면 디자인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디자인 이론가들은 디자인 행위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이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다시 아까의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모든 도구들이 사라지고 벌거벗은 몸만 남아있는 인간도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간으로 불러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 인간을 그 상태 그대로 놔둔다면 그들은 무엇을 할까?  아마 그들이 생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한 그들은 자신이 속한 환경을 자신들이 살기에 더 좋고 편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고안할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자연환경에서 주어진 그대로 살아가기에는 부적합한 면이 너무 많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구를 만들고 살아갈 방법을 고안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가 바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는 그 행위를 태초부터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디자인Ⅱ에 이어서.... )           
 

                       
                                                                                 디자인 전문 칼럼니스트 김성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