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
남자는 혼자 산골에 있는 마을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하루종일 쨍쨍 내리쬐던 해도 이제 서산 너머로 하루일과를 마치고 들어가려고 할 때 쯤
남자는 출출한 배를 채우려 길가에 있는 순두부집으로 들어갔다.
산골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젊은 아가씨가 주문을 받으러 나왔다.
'나이든 주모가 나올 꺼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의아한 표정으로 아가씨를 쳐다보다가
"아,,,,저 수...순두부 주세요" 라고 말했다.
"얼큰 순두부하고 그냥 순두부가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아,,,,그냥 순두부로 하겠습니다."
여자는 뭐가 재밌는지 환하게 웃다가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지으며 주방쪽으로 갔다.
여자는 다시 쇠쟁반에 반찬을 들고 테이블로 왔다.
남자가 말했다.
"여기 사시나요?"
" 아, 아뇨. 원래는 학생이라 서울에 있는데 지금은 방학이라 내려와서
이모님 일 도와드리고 있어요. 부모님 집은 충주쪽이고여..."
" 아, 그랬군요. 이런 산골에 이렇게 젊은 여자분이 식당에서 일을하고 계셔서 좀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런가요? ㅎㅎ 하긴....이 마을도 댐이 생기면서 대부분 수몰되고 지금은 거의 몇 채 안남아 있으니 젊은애들은 없죠.
저희도 댐이 생기기 전에는 이 곳에 살았지만 댐이 생기면서 충주 시내로 이사를 갔거든요.
그 때 중학교 이상되는 아이들이 있는 집은 읍내로 이사가거나 다른 도시로 갔어요."
여자는 말을 끝내고 거울 앞에 서서 잠깐 자기 얼굴을 뜯어 보더니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한 오분쯤 지났을까 여자가 양손으로 뚝배기를 들고 테이블로 왔다. 그리곤 아무런 양념이 되어 있지 않은 하얀 순두부를
놓고 돌아갔다. 남자는 종지에 있는 간장을 수저로 덜어 몇 방울 순두부 위에 뿌리고는 순두부를 먹기 시작했다.
순두부가 뜨거운지 가끔 입으로 후후 불어가면서 먹었다.
' 후후 맛있다 '
남자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는 정말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먹는 순간에만 몰입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번에도 남자는 밥을 먹는 15분여의 시간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밥먹는데만 집중을 했다.
아니 적어도 옆에서 보기에는 그래보였을 것이다.
남자가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 쪽으로 다가가자 여자도 카운터 쪽으로
왔다. 남자는 카운터 앞에 서있는 여자에게
" 아까 서울에서 학교 다닌다 그랬죠? 서울에서 한 번 얘기할 수 있을까요? "
여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 아, 순두부가 너무 맛있어서 그래요. 이 순두부를 평생 먹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여자는 알듯 말듯 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못박힌 듯 서있었고 남자는
그런 그녀의 반응은 무시한채
" 잘 먹었습니다. 여기 돈 받으셔야죠 " 하고 여자에게 지폐를 건냈다.
여자가 지폐를 추려서 금고에 넣으려다 지폐뒤에 숨어있던 명함을 발견했을 때 남자는 이미 음식점을 나간 뒤였다.
명함에는 풋사과 엔터테인먼트 전속 작사가 Kenzi 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사과 그림이 그려진 뒷면에는 짤막한 메모가 있었다. <휴대폰 주인 꼭 찾아주세요 ^^>
여자는 번쩍 정신이 들어 아까 남자가 앉아있던 자리로 가보았다.
의자에는 액정에 살짝 금이간 휴대폰이 놓여져 있었다.
여자는 휴대폰을 집어들고 문밖으로 나가 보았지만 해가지고 으슥해진 산길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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